잘 쓴 글이란 어떤 글일까요? 너와 나는 고유하다는 걸 느끼게 하는 글
저는 오랫동안 글을 잘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글을 잘 쓴다는 건 뭘까. 주변 사람들이 제게 그런 말을 해줄 때는 대체로 이런 의미였어요. 생각이 깊다,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애매한 감각을 명확하게 언어로 풀어낸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걸 대신 써준 것 같다는 말들. 그래서 저는 이십대 내내 그렇게 믿었어요. 깊이 있는 생각, 복잡한 개념, 사고가 드러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요. 말하자면, 내 생각의 깊이를 드러내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삼십대가 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글은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무언가를 연결하기 위해 쓰는 거구나 하고요. 내 생각이 아무리 깊어도 그것이 누군가의 감각에 닿지 않는다면, 그건 여전히 나 혼자만의 말일 뿐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됐어요. 좋은 글은 잘 연결되는 글이고, 그 연결이 가능해지기 위해서 비로소 생각이 깊어져야 한다는 걸요. 목적은 연결이고, 사유는 그 연결을 위해 필요할 뿐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글을 잘 쓰고 싶어요. 하지만 이제 그 말은 조금 다르게 들려요. 저는 깊이 연결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잠깐 멈춰 서게 되거나, 마음속에 오래 남는 무언가로 기억되는 글. 나의 고유함과 너의 고유함이 닿고 흔적을 남기는 글.
세상에 사람은 너무 많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너’와 ‘나’는 단 하나의 연결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는 글. 제가 지금 쓰고 싶은 글은 그런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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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본래 관계를 위한 행위
언어는 처음부터 관계를 위해 존재했어요. 언어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언어란 무엇인가”를 묻고, 그것이 단지 사물을 지칭하기 위한 도구인지, 혹은 사고를 정리하는 수단인지 질문해왔죠. 하지만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언어를 단순히 머릿속 생각을 표현하는 매체로 보지 않아요. 언어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도달하기 위해 발화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타인을 향한 행위, 곧 관계의 기술이에요.
하이데거나 가다머 같은 철학자들은 언어를 ‘존재의 집’이자 ‘이해의 방식’이라고 말했어요.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또 타인을 받아들여요. 이 말은 결국, 우리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는 건 단지 정보를 전하거나 생각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방식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글은 언제나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독자가 누구든, 그 글은 누군가를 향해 열려 있고, 닿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글을 잘 쓴다”는 건 문장을 매끄럽게 구성하거나 철학적으로 깊은 말을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정말 좋은 글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과 연결되는 글이에요. 어떤 문장은 정교하고 똑똑하지만 멀게만 느껴지고, 어떤 문장은 조심스럽고 소박한데 오래 남죠. 그건 문장의 완성도보다, 그 글이 어떤 감정과 태도로 쓰였는지, 독자와의 연결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는지가 차이를 만드는 거예요. 글은, 본질적으로 함께 있으려는 시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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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은 실천
오늘 하루 동안 내가 쓴 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메신저, 댓글, 이메일, 일기, 그리고 머릿속으로만 떠올렸던 말까지 포함해서요. 내가 어떤 말투를 자주 쓰는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갔는지, 어떤 말은 멈췄다가 다시 썼는지를 떠올려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우리는 말이라는 게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거나 닿고 싶을 때 조심스레 꺼내는 감정의 구조였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조용히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나는 오늘, 누구와 연결되고 싶었지?”, “내가 건넨 말 중 어떤 말은 누군가에게 오래 남았을까?”, “혹은 어떤 말은 닿지 않고 흘러갔을까?” 연결은 항상 성공하지 않아요. 하지만 연결을 시도하는 마음, 닿고 싶어 쓰는 말, 진심으로 건네는 문장 하나하나는 언젠가 어디에든 닿게 돼요. 나는 오늘 어떤 연결을 만들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연결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었는지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실천이에요.
글을 쓴다는 건, 결국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에요. 그러니 오늘, 내 말이 닿은 자리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내가 정말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가만히 물어보는 하루가 되길 바라요.
긴 글을 읽어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제 레터의 오픈율은 무려 70%가 넘어요. 그동안의 12편의 레터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레터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래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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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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