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공기가 참 좋습니다. 조용한 밤을 혼자 걷는 산책을 즐기게 되었어요. 어제는 아주 가느다란 초승달을 봤는데, 속눈썹처럼 가늘고 투명한 빛이었어요.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은은한 조명을 켠 채 드뷔시의 '달빛'을 틀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언어에 민감한 편이라, 노랫말이 좋은 음악을 즐겨 듣지만, 가끔은 가사 없는 멜로디가 더 깊은 감정을 자극할 때가 있어요. 드뷔시의 음악이 그래요. 단어 없이도 감정을 붙잡아두는 멜로디가 서정적이더라구요.
요즘은 감정을 깊이 느끼기보다 얼른 털어내고 넘어가는 게 미덕처럼 여겨질 때가 많아요. “그 감정, 너무 오래 붙잡고 있지 마” “그건 네 생각이니까 넘겨” 같은 말들이 일종의 생존 전략처럼 회자되죠. 물론 감정을 털어내는 것만이 방법이 될 때도 있지만, 어쩔 때는 감정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더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아직 이해되지 않은 마음의 결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에요.
우리는 언제부터 감정을 이렇게 ‘정리해야 할 문제’로만 대하게 되었을까요? 긍정적인 감정은 만끽하되, 부정적인 감정은 최대한 빨리 떨쳐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요. 그런데 감정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조절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회피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거니까요. 내가 이해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죠. 저도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해온 적도 있지만, 그래서는 해결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일부러라도 감정에 머무는 연습을 해요. 불안할 때는 불안하다고 인정하고, 외로울 땐 외롭다고 말하고요. 그런 감정을 가만히 들어보다 보면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지기도 하거든요.
드뷔시의 음악이 전해주는 섬세한 결처럼, 감정에도 그만의 결이 있다고 느껴요. 아주 얕고 가벼운 감정일지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바라봐주면, 내 마음의 목소리를 조금 더 잘 들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따금씩 가사 없는 음악을 듣고,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감정을 극복하는 힘이 아니라 감정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여유일지도 몰라요.
혹시 요즘 구독자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나요? 어떤 감정을 너무 빨리 털어내버린 적은 없나요? 부정적인 감정에도 나에 대한 신호가 있어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이에요. 너무 빨리 털어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 하루, 감정이라는 이름의 신호에 조금 더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