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다시한번 비탄을 안고 삶을 찬미하기
2025년이 벌써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 해가 낯설게 느껴지는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 흐름 앞에 당황합니다. 올해 안에 성과가 없으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성과가 있다면 계속 이 길을 이어가겠지요. 그래서 6, 7월은 저에게 중요한 시간입니다.
저는 지금 작가라는 목표를 향해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남들이 하나둘 결혼하는 나이에 저는 이혼을 했고, 이후 직장인과 작가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실현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저더러 용기있다고 하지만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교사를 그만둘 때도, 직장인을 그만둘 때도, 이혼을 할 때도, 쉬웠던 적은 없어요. 다만 그만두어야 그 다음을 내가 새로 맞이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선택할 수 있었어요. 두려움도 컸습니다. 잠을 설치는 날도 많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이 더 두렵기에 작가를 도전해봅니다.
삶에는 희비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비탄의 시기가 인생에서 두세차례 있었고, 그 시간을 지나며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해 왔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눈물이 있는 사람, 그늘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시처럼, 저 역시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늘이 있는 사람은 더 선명하게 빛을 볼 수 있고, 남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으며,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글로도 전해지길 바랍니다.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기입니다. 경제적 성과가 즉각적으로 나지 않더라도, 읽고 쓰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충분히 허용하려 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식물을 옮겨 심으면 뿌리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라고요. 그 말이 저를 조금은 안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요? 쉬운 길이었다면, 아마도 그만큼 귀한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비가 온다고 비를 맞으며 춤출 정도의 멘탈은 아니지만, 비 오는 날 집 안에서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비가 내린 후 피는 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너무 초조해하지 않고, 담담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감각하며, 삶을 찬미하는 태도로 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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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 이후에도 삶을 긍정하는 철학들
삶을 찬미한다는 말은 자칫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철학자들이 말하는 삶의 긍정은 ‘기쁘고 아름답기 때문에 찬미한다’가 아니라, ‘고통과 모순까지 끌어안으며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음을 긍정한다’에 가깝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운명애(Amor fati)”라는 개념을 말합니다. 일어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것이죠. 이는 단순한 수용을 넘어, 고통과 상실, 실수를 포함한 삶 전체를 ‘반복되어도 좋을 것’처럼 여기는 태도를 말해요. 그는 “비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말이 진부한 위로가 되지 않도록, 고통을 성장의 조건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존엄한 것으로 바라보길 바랐어요.
철학자 알베르 카뮈도 『시지프 신화』에서 말합니다. 시지프는 돌을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무의미한 형벌을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지프를 행복한 인간이라 생각한다”고 말하죠. 삶에 본질적인 의미가 없다는 걸 받아들인 이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과 의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런 실존철학자들의 사유는 동양사상과도 깊게 연결됩니다. 장자는 현실의 부조리와 괴로움을 초월하는 사유를 펼칩니다. 장자에게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흐름이에요. 슬픔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기쁨을 움켜쥐려 하지도 않죠. 그는 “삶은 바람처럼 스쳐가는 것"이라며, 있는 그대로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장자의 자유는 무감각한 체념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를 긍정하는 태도에 가까워요.
불교에서도 비슷한 통찰이 나옵니다. 사성제와 연기법은 삶의 고통을 벗어나야 할 함정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과정으로 바라봐요. 고통은 인연 따라 생긴 것이기에 사라지기도 한다는, 무상(無常)의 지혜가 있죠. 불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삶의 희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희비를 일으키는 집착을 놓는 연습이 필요하다"고요. 이때 삶의 찬미란, 희비를 초월해 있는 그대로의 생을 살아내는 그 자체에 깃든 조용한 기쁨일 겁니다.
비탄이 있어도 삶은 계속되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 우리는 그 사실을 발견하고 감각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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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늘과 빛
삶이 늘 밝고 맑기만 하진 않죠. 누구나 자기만의 그늘이 있어요. 때로는 상실과 실패, 관계의 어려움, 회의와 무기력.
하지만 그 그늘 속에서도 이상하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예요. 고요한 위로, 깊어진 시선, 오히려 더 단단해진 나 같은 것들요. 오늘은 그 빛과 그늘을 나란히 바라보는 글쓰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최근 내가 느낀 ‘비탄’ 혹은 그늘의 감정을 먼저 적어보세요. 그리고 그 감정 속에서 나를 붙잡아준 것, 작게 빛났던 무언가를 떠올려 적어보세요. 그늘도 빛도 내 삶의 일부였다고 인정하는 것. 그게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작고 단단한 실천이에요. 떠오르는 게 있다면 메일에 답장으로 공유해주세요. 구독자님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지도 몰라요!
이번주부터, 평일 하루 1번 레터가 발송됩니다. 주5회 발송으로 정했답니다 :) 그동안 들쑥날쑥했던 시간을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시간대는 당분간 들쑥날쑥할 건데, 시간대도 조만간 픽스해볼게요.
제 서툰 시작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유우우명한 작가가 되면 여러분을 더 뜻깊게 생각할 거랍니다!? ㅎㅎㅎㅎ
감사한 마음을 담아,
래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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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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