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일정을 짜고 계획을 세웁니다. 예측 가능성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죠. 심리학에선 이것을 ‘통제감’이라 부릅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느낄 때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해요. 그런데 과도한 통제감은 오히려 불안과 좌절을 부를 수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는, 삶을 완전히 계획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소진을 유발하곤 하죠.
이럴 때 중요한 건 유연한 통제감, 즉 ‘통제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인식입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이를 합리적 수용이라고 불렀습니다. 삶이 완전히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나에게 허용하는 태도. 이는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또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사람의 사고 방식에는 두 가지 시스템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빠르고 직관적인 1차 사고, 다른 하나는 느리고 계산적인 2차 사고입니다. 즉흥성은 여기서 ‘1차 사고’의 작동이라 볼 수 있어요. 무언가를 ‘굳이’, ‘갑자기’ 하고 싶어질 때, 그것은 논리보다는 직관이 움직이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즉흥적 행동들이 때론 우리 삶에 더 높은 만족과 생기를 가져다주곤 해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제시한 ‘몰입(flow)’ 개념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계획된 성공이 아니라,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며 몰입할 때 인간은 가장 깊은 만족을 느낀다고 합니다. 즉흥성이란, 그 몰입의 순간으로 나를 데려가는 촉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즉흥성은 유한성과 어떻게 연관될까요?
삶의 제한된 시간에 대한 자각은 존재론적 불안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이는 인간 존재가 유한하다는 데서 오는 불안인데, 역설적으로 이 불안은 삶을 더 충만하게 살도록 자극합니다. 죽음을 의식하는 사람일수록 더 즉흥적으로, 더 진심으로 삶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죠.
어쩌면 삶을 충만하게 살고자 하는 저의 이런 욕망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삶의 유한성과 상실을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일지도요. 그러니 즉흥성은 충동이 아니라, 삶을 더 생생하게 느끼려는 감각의 회복일지도 몰라요. 심리학은 이를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삶의 방식으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