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돌아보게 되는 생일 존재를 축하하는 날
싱글이 된 후 처음 맞이한 생일을 보냈어요. 사실 생일 전부터 올해 생일은 좀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에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다행히 한 친구가 생일 당일에 뭐하냐고 물어봐 줬고, 그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웃고 떠들 수 있었어요. 덕분에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어요. 배우자나 애인이 없을 뿐이지 친구들은 늘 옆에 있는데 말이죠. 조금 잊었었나봐요.
생일은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날인 것 같아요. 누가 나를 기억해주고,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해주는지 보이기 때문이에요. 올해는 유난히 저를 챙겨준 사람들이 많았어요.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어쩌면 친구들은 늘 저를 챙기고 있었는데, 과거엔 제가 그 고마움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건 아닐까 하고요. 혼자가 되고 나서야 주변의 마음을 더 진하게 느끼게 된 건지도 몰라요.
립스틱, 향수, 귀걸이, 꽃, 손거울, 텀블러, 핸드크림, 디퓨저, 비타민, 잠옷, 케이크까지—작고 예쁜 물건들이 하나같이 제 취향에 쏙 마음에 들어요. 물론 제 위시리스트에서 받은 거라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요. ㅎㅎ. 가족에겐 맥북을 받았고요. 오글거리긴 했지만 사랑하는 너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노래도 분명 선물이죠. 엄마가 한솥 끓여준 미역국을 며칠간 먹고요.
생일은 누군가가 세상에 태어난 걸 기념하는 날이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지금 여기 있음’을 확인하고 축하하는 날이기도 해요. 존재의 지속을 함께 기뻐하는 사이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소중하고 드문 일이에요. 생일이 아니면 하지 못하는 말들도 있어요. ‘너가 있어서 좋아’라는 말,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게 고마워’ 같은 말이요. 그 마음은 더 자주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요. 고맙고, 따뜻하고, 함께해서 다행인 사람들에게 조금 더 자주 말을 건네야겠어요. 지금 여기 함께 있는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살아가게 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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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존재한다는 기쁨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축하를 받는 날이 있어요. 성취도 필요 없고, 설명도 필요 없고, 그냥 ‘태어난 날’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메시지와 선물이 도착하는 날. 바로 생일이에요. 우리가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념받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대부분의 날은 무언가를 해내야 의미가 생기고,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인정받고, 남들보다 앞서야 스스로에게조차 떳떳해지는 시대니까요.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착취하며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고 말해요.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죠. 그런 점에서 생일은 특이한 날이에요. 아무런 성과 없이도 “너가 있어서 좋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날. 바로 그 점에서 생일은 존재의 무조건성을 회복하는 날일지도 몰라요.
심리학적으로도 생일은 자아를 구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 중요한 ‘리추얼(ritual)’로 여겨져요. 특히 삶의 환경이 달라졌을 때, 예를 들어 결혼, 이혼, 독립, 이직 같은 변화를 겪은 시기에는 생일이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현재의 나’가 어디있는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울처럼 작용해요. 싱글이 된 후 처음 맞는 생일은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새삼 돌아보게 했고, 그런 변화 속에서도 나를 기억하고 챙겨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 깊이 와닿더라구요.
사회학적으로도 생일은 ‘소속과 관계’를 확인하는 문화적 장치예요. 요즘은 메신저 자동 알림이나 SNS 댓글을 통해 생일을 축하하는 풍경이 익숙하죠.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직접’ 축하를 건네는 사람들, 선물이나 시간을 내어준 사람들에게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돼요. 단순한 축하 이상의 의미가 생겨나는 거죠. “나는 지금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생일은 그런 관계의 지도를 그려보게 하는 날이에요.
그러니까 생일은 단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관계의 지도를 다시 그려보는 날이고, 경쟁 없는 존재로서의 나를 잠시 회복하는 날이며, 삶의 방향을 가만히 되짚어보는 날이에요. 즉 생일은 사회 속 개인이 존재와 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중요한 문화적 장면이에요.
제가 너무 생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불편하시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생일과 인간관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나타나는 거겠죠! 제 생각이 정답은 아니니까요. 우리는 모두 존재와 관계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다만 저는, 제 주변을 소중하게 여기는 제 마음과 방식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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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아닌 날에도, 누군가와의 연결을 기뻐해보기
생일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너는 존재만으로도 소중해”라고 말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예요. 하지만 그 말은 꼭 생일이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이번 주엔 생일이 아닌 날에도, 누군가의 존재를 조용히 축하해보면 어떨까요? 꼭 선물이 아니어도 좋아요. 너가 있어서 고맙다, 좋다는 말을 건네보는 거예요.
그렇게 가끔은 생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축하받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우리가 먼저 시작해볼 수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감각을 선물하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꼭 그래야겠어요.
구독자님과의 연결을 기뻐하는,
래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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