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풍성하게 하는 두 가지 방법 쓸 만한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삶을 풍성하게 하는 방법
요즘 매일 글을 쓰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꾸준함이 기특하게 느껴지는 한편, 매일 글감을 찾는 일이 하나의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일상이 너무 단조로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혼자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낯선 장소에서의 감각은 생각보다 많은 글감을 안겨주곤 하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론 곧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새로운 자극은 꼭 바깥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내 일상에 더 섬세한 시선을 갖는 것만으로도 글이 될 만한 장면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매일 이전에 안 해본 경험을 새로 추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잖아요. 하지만 같은 거리를 걸어도 오늘의 바람이 어떤 결을 지니는지, 오늘 내가 했던 대화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었는지를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가능하죠. 그것만으로도 삶은 조금 더 풍성해집니다.
요즘은 새로운 경험들을 만나보고 있어요. 해보지 않은 주저되는 일에 도전하고, 미지의 선택을 더 반기고 있습니다. 만남에 있어서도 이전에는 이상형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만 보려 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열어두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여겼던 것이 어쩌면 단지 익숙한 것이었을지도 모르니까요. 낯설고 어색한 경험에서 오히려 더 큰 편안함과 확장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혼자 가는 여행, 출근하지 않는 일상, 인문 에세이 작가, 이상형이 아닌 사람 같은 것들이요.
이번 생일을 함께 보낸 친구가 있는데요. 서른이 넘은 나이에 그 친구는 지금 로스쿨을 준비하고 저는 작가를 준비하고 있어요. 편안하지만 불안하기도 하다는 모순적인 감정을 그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는 제게 “불안하다는 건 잘하고 있다는 뜻이야”라고 말하더라고요. 불안해도 잘하는 거야, 가 아니라 불안하기에 잘 하는 거라니. 역접의 접속사가 아니라 순접의 접속사라니. 불안함이 잘 하는 거라니. 경쾌한 충격이었어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갔어요. 불안하다는 건 아직 내 안에 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고, 도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올해는 잔뜩 불안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삶 전체에 더 많은 기회를 주기로요. 실수할 기회, 실패할 기회, 잔뜩 불안할 기회, 새로울 기회, 성장할 기회, 성취할 기회. 글쓸 거리가 가득한 인생이 되겠죠. 글은 살아 있는 하루하루에서 시작되니까요.
|
|
|
감각이 살아있는 삶
‘글감이 없다’는 말에는 제게 두 가지 감정이 섞여 있어요. 하나는 지루함이고, 또 하나는 조급함이에요. 삶이 단조롭게 느껴질 때,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야만 글이 써질 것 같은 기분. 혹은 뭔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는 쓸 게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기분이죠. 일상이 너무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아깝게 흘려보내고 있다는 초조함이 들어요. 삶을 아깝지 않게 매일을 소중하게 살고 싶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멀리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취미에 빠지려고 하죠.
그런데 정말 새로운 자극만이 내 글의 재료가 되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일상, 반복되는 장면들 속에도 글이 숨어있죠.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지각(perception)이 단순한 ‘정보 수용’이 아니라, 몸을 통해 세계를 살아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어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으로 느끼는 방식이요.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누군가는 그 공간을 메마른 풍경으로 기억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소한 온도와 빛의 변화 속에서 감정을 느끼죠. 그러니까 삶의 디테일은 대상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가 단조롭다고 느껴질 때면, 메를로퐁티의 말을 떠올려요. '나는 지금 충분히 지각하고 있는가?' 감각이 닫힌 채 일상을 소비하면, 특별한 날만이 기억에 남지만, 감각이 열려 있으면 평범한 날들도 다시 보이기 시작해요. 아침에 마신 물의 감각, 잠깐 스쳤던 생각, 친구가 남겼던 문장 같은 것들.
늘 극적인 사건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미국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은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아주 짧은 순간들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고 말했어요. 이 순간들은 기억될 만큼 큰 사건이 아닐지라도,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정체성, 관계, 감정을 조율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해요. 결국 인생은 몇 번의 극적인 순간보다, 수많은 ‘짧지만 감정적인 순간들’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셈이죠.
그렇다면 어때요? 매일이 풍성하기 위해서 매일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볼 필요는 없는 거죠. 수많은 짧고 일상적인 감정적인 순간들이 우리의 일상을 풍성하게 지탱하고 있고, 우리는 그 작은 순간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포착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면 되는 거죠.
아, 요즘 글쓸 게 없네, 어떻게 하루를 풍성하게 살지? 라는 잠깐의 생각에서, 그 생각을 통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감각을 알아차리고 공유한 오늘의 글처럼요. 누군가에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순간들. 하지만 내가 그걸 감각하고, 기억하고, 단어로 붙잡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하나의 기록이 되고, 이야기로 남게 돼요.
그래서 저는 요즘 두 가지 방향을 함께 가져가려 해요. 하나는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용기, 또 하나는 일상을 더 섬세하게 바라보는 눈. 전자는 나를 자극의 세계로 데려가고, 후자는 같은 풍경 속에서도 나만의 감도를 찾아내는 일. 둘 다 글만을 위한 게 아니라 삶을 조금 더 살아있게 만드는 선택이기도 해요. 감각이 살아 있는 삶에서 자연스럽게 쓸 이야기가 따라오리라 믿어요.
|
|
|
오늘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다면
글을 쓰고 싶은데 막막하다면, 오늘은 하루 중 ‘단 하나의 장면’만 기록해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특별한 사건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창밖의 비, 엘리베이터 안의 어색한 정적, 오늘 마신 커피 한 잔의 온도처럼 아주 사소한 것이어도요. 중요한 건 그 장면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기억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에요. 그 감각을 놓치지 않고 붙잡는 것이 구독자님의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루에 하나낯선 행동을 시도해보세요. 평소라면 말 걸지 않을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 잘 가지 않던 동네로 산책 가보기,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책방에서 눈에 띄는 책 한 권 집어보기처럼요. 이건 삶을 새로 고치려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조금 더 생명력 있는 하루를 만들려는 태도입니다. 한 구독자님께서 제게, 생명력이 느껴지는 삶을 산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이 퍽 좋았어요.
단조롭다고 느껴지는 삶도, 매일 한 줄의 문장과 하나의 낯선 경험이 더해지면 훨씬 풍성해질 수 있어요. 구독자님께 여쭤보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물어봐주세요.
“오늘 하루 중,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오늘 한 가지, 평소 하지 않던 건 무엇이었나요?”
이 두 가지 질문만 가지고도, 충분히 풍성하게 살 수 있고, 쓸 수 있어요!
매일을 풍성하게 살고자 하는
래나 드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