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터를 16호로 발행했어야 했는데, 15호로 잘못 보냈어요. 몇 분의 구독자님들이 말씀해주셔서 알게 됐어요!ㅎㅎㅎ. 그러면서 “이런 거 보면 AI가 아니란 증거네요”, “괜히 더 사람 같아서 좋아요”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실수였는데 따뜻하게 봐주시다니 신기했고, 실수가 인간미로 받아들여지니 편안했어요. 완벽하지 않아서 불안한 게 아니라, 오히려 완벽하지 않아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기분이었어요.
요즘은 많은 영역에서 인간보다 AI가 더 정확하고 빠르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제가 일했던 AI 업계에서도 그랬어요. 점점 더 많은 영역이 자동화되고, 오류 없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어요. 효율과 정확성의 기준에서 보면 인간은 늘 부족하고 느린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점점 궁금해졌어요. 그렇다면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가치를 갖는 걸까, AI가 모든 실수를 줄이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잘하면 좋을까 하고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실수를 피하려고 노력해왔어요. 실수하면 무능한 사람, 어설픈 사람이라는 낙인이 쉽게 찍히니까요. 특히 한국 사회는 더 그렇죠. 학창시절부터 경쟁 속에서 자란 우리에겐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곧 사람의 능력처럼 여겨졌어요. 틀리는 순간 당황하고, 말 한 마디도 신중하게 하게 되고, 그래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완벽하지 못하다고 평가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한국 교육과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시대는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완벽함보다 오히려 솔직함, 매끄러움보다 오히려 서툼에서 진심을 발견하려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어요. 사람들이 점점 더 ‘서사를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걸 느껴요.
SNS를 보면 그래요. 단순히 예쁜 사진이나 스펙보다, 그 사람이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공유할 때 더 많은 공감이 생겨요. 잘 짜인 이미지보다, 살아 있는 말투와 서사에 사람들이 더 끌리는 시대예요. 브랜드도 마찬가지예요. 기능이 좋은 제품보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철학을 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사람들은 이제 맥락과 이야기를 함께 소비해요.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삶을 비춰보려 해요.
기계가 완벽을 향해 진화할수록, 사람은 점점 더 ‘이야기하는 존재’로 남는 것 같아요. 실수하고, 고민하고, 돌아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저 사람도 나처럼 망설였고, 저 사람도 실패했지만 다시 해보려 하는구나.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위로받고 용기를 얻죠. 저는 그게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AI는 예측은 잘하지만 감정은 겪지 않잖아요. 감정이 만들어낸 이야기, 시간이 쌓아올린 서사. 그건 인간만이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요즘, 실수조차 하나의 문장처럼 느껴져요. 다듬어지지 않은 말투도, 흐트러진 하루도,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니까요. 사람은 정확해서가 아니라, 살아온 이야기로 기억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실수를 하면서도 다시 문장을 이어가는 존재, 실패하고도 의미를 찾아 문단을 바꿔보려는 존재. 우리가 추구할 인간다움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서사의 태도 아닐까요.